항상 주제넘는 글들을 남길 때마다, 당장 내일 아침에 입에 풀칠이나 할까 걱정하는 주제에 이 얼마나 팔자좋은 사치인가 싶은 기분이 듭니다. 하지만 그럼에도 뭔가를 남기게끔 나를 이끄는 무언가가 있다면, 그것은 먼 옛날 대나무밭에서 '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'를 외치던 노인네의 심정일지도 모르겠네요. 답답함, 그리고 어딘가 느껴지는 이 막연한 소외감. 저의 글은 아마도 이로 인해 터져나오는 결과물인가 봅니다. 비록 그 수준은 많이 낮더라도..
예전에 썼던 글이 하나 있습니다.
마이클무어 뒤집어 보기라는 글인데,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이 글에는 제가 항상 느껴왔던 이 사회에 대한 시선이 담겨있습니다. 정말이지 항상 느껴왔던, 그리고 제가 조금이라도 머리를 깨치기 시작한 순간부터 언제나 느껴왔던 그 답답했던 부조리와 기묘하기 짝이 없는 판단이 이루어지는 선택의 과정.
그 때 느꼈던 부조리를 인식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고, 그 이후 그것을 정리하기까지 또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. 그리고 한 번 그런 과정을 겪은 뒤로는 그것이 고정관념이 되어버린 탓인지, 잘 바뀌어지지가 않습니다. 이것은 저의 고집 탓인지, 아니면 그 때 만들어놓은 인식의 툴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인지, 여전히 저는 고민하고 있습니다. 모든 것은 불완전하니까요. 저 또한 많이 미숙한 사람이고.
아무튼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은 최근의 사건들 때문입니다. 저는 경험자거든요. 지금 뿐 만이 아니라 이전부터 몇 차례.
항상 그래왔던 패턴에 언제나 쓰였던 장치들이 그대로 쓰이고 있습니다. 다만 그 연령이 대학 초년에서 더 어린 사람들로 변하고, 컨택이 이루어지는 장이 대학에서 인터넷으로 바뀌었습니다. 항상 그래왔던 일이 이번엔 성공해서 좀 더 커졌네요.
쓸데없는 소리를 할 때는 항상 공포감에 휩싸입니다. 그와 동시에 귀찮음, 말을 떼고 수습해야 하는 그 귀찮음에 직면할까봐 또 한번 공포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. 그 정도의 용기는 제게 없으니까.. 그럼에도 답답해서 이렇게나마 돌려서 숨어 말하고 갑니다.
목적지향적인 사람들이 보여주는 공포스러움은 가히 상상을 초월합니다. 이것은 반대편에 서 봐야만 알 수가 있습니다.
신성한 목적은 절대정의에 의해 수호되고 모든 사람들은 성전의 용사요 성전에 몸 바친 소영웅이 됩니다.
입 열기가 두려워 이전부터 친하게 지내왔던 몇 분들과만 대화를 해 봤습니다.
이 분들은 나름 그쪽 바닥에서는 상당히 유연했던 사람들이었는데, 결국 역시 우리는 서로가 가는 길이 달랐습니다.
옮고그름의 문제라기 보다는 이 역시 선택과 가치관의 문제이니 저는 그분들을 미워하지는 않으려 노력할 것입니다.
많은 움직임에는 그만큼의 많은 동기가 있습니다. 그리고 이를 하나로 이어주는 것은 증오의 감정입니다.
그저 증오로 모든 것을 덮고 그 힘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은 머지 않아 그 증오가 자신들에게 향하게 되리란 것을 왜 모를까요.
지난 5년간 항상 경험했던 것이 그런 것이었음에도 나아지는게 전혀 없으니 보고있노라면 조금은 슬픕니다.
악에 대항하는 모든 힘이 올바른 것은 아닙니다. 칼이 필요한 순간에 갑자기 쥐여지는 칼은 항상 의심을 해 봐야 합니다.
그리고 그 칼을 누가 쥐어주었는지. 이것은 가장 중요한 의문입니다. 이것을 모르고 칼을 휘두를 때 만큼 불쌍한 때가 없습니다.
쓰러뜨리기 위해 증오로 무장하면 할 수록 지금 잠깐은 편해지지만 점차 상대편에 공격의 여지만을 잔뜩 남겨주게 됩니다.
지도자 역시 한명한명 모두에게 사태를 이해시키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하지만 그 촉박함에 밀려 양심을 버려선 안되지 않을까요.
자신들 이외엔 어차피 설명해 봤자 이해할 수 없기에 증오로서 '옳은 길'로 이끌어가도 된다는 발상 역시 역겹게 느껴집니다.
이것이 시대의 흐름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고 있습니다.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흐름.
그러나 어찌할 수 없다고 해서 자신을 속이고 올라탈 이유는 없지요. 지금 딱 그런 심정입니다.
그리고 각자의 진리가 있듯, 아무래도 제게는 이것이 진리인것 같습니다.
그 대신 저는 힘들겠지만 또 다른 칼을 찾거나 만들어야겠지요.
이 소외감과 답답함은 누구와 풀어야 할까요.